posted by 구름쟁이 2012. 9. 6. 14:06

먼저 제목을 이렇게 쓴 것은 나름 이유가 있어요. 원제는 <아우디 그녀, 세상을 사로잡다.> 이지만 책을 읽은 후 그녀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우디의 최연소 여자 이사. 자동차 마케팅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최연소 여자이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노력과 인내, 도전의 젊음이기에 주목 받고 인정 받아야 합니다.





제가 자주 들리는 조이라이드 블로그의 필진 중 한명이기도 하고, 까남이 수없이 많은 글을 쓸때 단 두 번의 포스팅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연경씨 !!


멋있쪄요~ 아아아아아앙아앙~


제가 변태라서 이러는게 아니라 이연경씨의 조이라이드 필명이 아앙~ 이예요. 매력 터지죠?

제가 아우디 A5같은 남자라면 메일이라도 보내서 인사라도 하겠는데 지금은 뭐 퀵보드 수준도 안되는 지라 여신님 쳐다보듯 하고 있습니다. 저도 부지런이 노력해서 35세 전에는 책 한권은 나올 수 있도록 부지런 좀 떨어야겠습니다. 일단 시작은 수영이라도 제대로 배우는 걸로...


책 소개를 간단히 하면 아우디에서의 극적이고 거창한 성공 신화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위인전 같은 자서전이 아니라. 간결하고 심플하지만 사회초년생들에게 필요한,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참고서(?) 정도라고 할까요?


고등학교 때 날라리 소리를 듣던 그녀 였지만 패선과 공연, 문화등에서는 전문가 였고 트랜드를 아는 사람. 전설의 홍대 100인중 한명. 소비하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파티플레너를 하면서 창조하는 사람.  남성들이 중심인 조직 문화에 도전하기 위해 담배를 물었던 사람. 수트는    갑옷이었고 킬힐은 중세시대의 말이었으며 짧게 올려친 숏커트는  바로 그녀의 강한 도전정신이었습니다. 레이싱 걸이 아닌 레이싱 모델, 자동차 발레, 자미로콰이, 레미크레비츠..수 많은 최초를 만들었던 사람 그리고 아우디코리아 사원번호 1번.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시나요?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구름에 가려진 느낌일껍니다. 그 구름 뒤를 확인 하고 싶으시면 읽어보세요. 장난아니예요. 재밌어요. 간만에 빠져들어서 하루만에 휘리릭하고 읽었씁니다. 몇 사람 빌려 줬다가 다음에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에는 회사라는 곳, 특히 조직 구조에서 그녀가 배우고 느낀 것들이 깨알같이 담겨있거든요. 조직내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느냐, 철저한 이익 집단인 회사에서 과연 친목모임에만 익숙한 여성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 그리고 자신이 과연 월급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리고 중요한 것 뒤통수 까일 때 살아남는 방법! 연경씨가 느끼고 배운 것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특히나 내가 사랑하는 여자 동생, 후배님들에게 꼭 한 번은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꼬옥~!! 


 물론 내꺼 빌려주는 거지 사주진 않을꺼예요. 혼자 먹는 피자는 슬프지만 나눠 먹는 피자는 돈도 덜들고 더 맛있는 것잖아요..................


내용과는 별개로 몇가지 재미난 것을 발견 했습니다. 먼저 책의 구성. 커버에는 큼지막하게 본인의 사진이 들어갔습니다. 나쁘지 않지만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을 보면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아우디 차량의사진들도 그 다지 없고 본인의 사진은 거거어어어어의 없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마 1장 정도 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데 자기의 사진이 없다니.유명하신 모 단체의 대표님 자서전이 있는데 학창시절에서 부터 임원때까지 엄청나게 많은 자기 사진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게 없어서 조금 놀랐습니다. 왠지 최연소, 여자, 이런 호기심 어린 단어가 아니라 오로지 일 하나로만 평가 받고 싶어 하는 그녀의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재밌었어요. 


그리고 책의 뒤쪽 커버, 으례 그렇든 다른 사람들의 짧은 평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한 사람이 보이는 군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입니다. 예능 PD와 글로벌기업의 마케팅이사 얼핏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은데 읽고 난 후에 들여다 보면 이렇게 잘 어울리는 관계도 없다 싶더라구요. 촌철살인의 자막과 천재적 연출의 무한도전과 그녀의 화려하고 문화 충격에 가까운 신차 발표회는 분명 닮은 곳이 있습니다. 열정을 품고 노력을 벗삼아 사는 당신들 멋지십니다. 저도 열심히 살래요.


어렸을 때 위인전을 많이 읽어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읽었습니다. 근데 그냥 읽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좀 배우면서 읽을려구요.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왜 그사람은 그리도 잘 팔리는 책의 주인공이 되었고 나는 아직도 이러한 번민과 고뇌속에 살고 있는지... 가상이 아닌 그 사람들의 진짜 리얼 라이프를 간접적이나마 지켜면서  우리들 삶 역시 알차고 재미지게 만들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자서전 혹은 비슷한 책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누가 보든 안보든 꾸준히 코콧독서팀을 유지해 나가는 것 또한 나에겐 세상을 사로잡을 하나의 힘이 되겠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가나는군요. 에블바리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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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30. 20:10

하늘은 온통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차있고 바람은 성난 황소 콧바람처럼 거칠게 분다. 그앞에 서있자니 머리가 헝클어져 고개를 들수없고 눈이 시려 앞을 볼수가 없다. 아무리 태풍이라지만 나약한 내모습을 보니 안타갑다. 하지만 태풍이 강한걸 어쩌겠나. 잠시 바람이 멈춘다. 이제 앞을 편하게 볼수있어서 다행이지만 또 바람이 강하게 불까바 걱정이다. 한치 앞을 못보다 잠시 한숨돌린다 싶으면 또 바람이 부는것이 내 인생같아서 태풍이 야속하진 않구나. 혼자서 바람을 헤쳐나갈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다. 누군가가 도와 줬으면하는 생각에 옆을 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있다. 도와달라고 손을 뻗을려다 이내 생각을 바꾼다. 나와 비슷한 처지인데 도와달라니 염치가 없는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함께 버티고 나아자고 말한다. 난 고마웠다. 무작정 도움을 바라긴 했지만 그것보다 함께 버티고 견뎌 나가자니 더 든든해졌다. 인생을 살다보면 혼자서 힘들때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사막의 오아시스이자 어두워진 바다의 등대이자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지 않을까? 다시 바람이 강하게 분다. 이젠 걱정따윈 없다. 아니 걱정이 되지만 견딜수 있다.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내가 뜻한바를 이루고 내 옆의 의인에게 힘이 되줄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순간 힘들 내 옆의 의인들 나의 오래된 벗이여 함께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나도 너희들에게 힘이 되리라. 평생 어깨동무하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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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30. 12:52

출처 - http://blog.naver.com/acientsoul/150073449985 내블로그  



 

현재의 시점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살펴보면, 그들의 발전은 자원을 소비시킨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고 인간 삶의 질이 증가할 때 마다 그에 상응하는 막대한 자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 분간하기는 어려우나 현대문명은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원의 무분별한 소비와 인간의 편의성에만 편향된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은 자연의 파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눈을 뜨고 생생히 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건축술이 발전함에 따라 푸르른 녹지들이 하늘을 찌를듯 드높이 솟아있는 빌딩들의 음울한 회색빛 창끝에 파괴되고 있고, 이동 수단의 발달로 파랗고 투명한 하늘은 뿌연 연기에 가려 그 빛이 퇴색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성 메시지들도 너무 흔하고 닳아빠져서, 더이상 사람들의 인식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제는 비판적 시각도 무뎌져가도 있는 이러한 발전 방향은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이 가속화 됨에 따라 인간의 기호는 그 기술의 발전방향에 편향되는 성향을 띄고 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좋은것, 더 최신의 것을 원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기술 발전 속도에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으며, 인간의 개성을 점차 희석시키는 동시에 개인 이기주의를 심화시킨다. 개성의 위축과 개인 이기주의의 증가는 점점 부족해져가는 자원의 한계와 맞물려, 군중심리가 더더욱 심화, 발전하여 개개인의 행복을 집단의 규약과 체제의 틀에 끼워맞춰 합리화시키거나, 빈부격차에 따른 광역적인 계급사회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첫번째의 경우가 점차적으로 일반화되면 결국 먼(혹은 가까운) 미래에는 군중심리에 의한 집단의 체제와 규약이 개인의 우위에 서게 되고, 그 집단의 체제와 규약은 지배자가 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 지배자는 「매트릭스」의 로봇이 될 수도 있고, 「이퀼리브리엄」의 감정을 억제하는 약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인간은 집단의 이익에 의해 인권을 유린 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둘째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미래에 계급사회가 형성되는 것은 순전히 경제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 발전이 눈부시게 이루어지면서 증가되는 것은 빈부의 격차이다. 기술이 최신의 것일수록 상품은 그 값어치가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심리에 의해 기술의 발전속도는 더욱 증가하고 그에 비례하여 기술의 가치는 더더욱 높아진다. 그러한 기술을 누릴 수 있는 계층은 더더욱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또 다른 기술 수준의 증가를 낳는다. 결국 문명은 기술을 누릴 수 있는 상류계층과 가난한 하류계층으로 나누어 질 것이고, 상류층의 두께는 점점 얇아질 것이다. 이는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야기시킨다. 여기에 고갈되는 자원이라는 한계를 부여하면  이러한 사회의 출현은 더욱 명약관화하다. 이같은 생각은 필자의 독자적이고 부풀려진 생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더 일반적인 생각이다. 환상 장르의 한가지인 '스팀펑크'에는 그 세계관을 설명하는 몇가지 법칙이 존재하는데 〈과학 문명의 발전〉과 함께 가장 중요한 법칙으로 〈계급 사회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즉 과학기술문명이 발달 할수록 계급사회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했다는 뜻이다. 굳이 예를 꼽아보자면 「미래소년 코난」을 위시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과 「총몽」등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예가 보여주듯 산업혁명이후 부터 발생된 과학기술문명 발전의 미래는 다분히 디스토피아적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지금 현대문명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의 방향 그대로 발전한다고 가정했고, 이러한 기술문명은 소비적 경향을 띄고 있기 때문에 〈소비적 과학기술문명〉이라고 말하겠다.

     〈소비적 과학기술문명〉을 계속 발전시키면 지배자의 형체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다수의 인간들은 지배를 받게 되고 여기에서 유발된 자유의 억압은 기술의 발전이 잉태한 생명경시사상과 더불어 예전의 전제군주제 때보다 훨씬 더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하게 될 것이다. 이 미래의 초상을 점쳐보는 논리에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논리를 적용하였고, 우울하고 음습한 모습이므로 《Gloomy Leviathan》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모습이 생명경시 사상의 확대로 발전 할지, 개성의 완전말살로 발전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인간 문명은 성장을 멈추고서는 고이고 썩어 멸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자원과 환경은 유한하다. 더욱 관념화하자면 현재 유일하게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 지구는 유한하다. 인류는 이 사실과 함께, 자신이 내딛고 있는 파괴적인 행보를 조금씩 깨닫고 있지만, 브레이크를 걸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말만으로 환경보호를 외치고 환경파괴를 걱정하기보다, 기술발전의 방향을 〈소비적〉이 아닌 〈환원적〉혹은 〈재생산적〉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우리세대가 망설이는 사이에 문명은 조금씩 디스토피아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조금씩 그 징후가 관찰이 된다.

     이제 역사를 이끌어갈 기술자들은 그저 인간의 편의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명의 미래를 꿰뚫고 짚어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이 기술자들의 발걸음은 현재 행보의 브레이크가 될 수도 있고, 액셀레이터가 될 수도 있다. 덧붙여 이들은 우리세대의 초상이다. 이들의 행보가 우리 세대의 역사에 새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생각은 결국 우리들의 생각으로 일반화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미래의 세대들이 우리 세대를 몰락의 시작점으로 보느냐 창조와 재생산의 시작점으로 보느냐는 우리의 눈과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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